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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방/평범한 에세이

[포르투 여행에세이, 여행글귀] 그러는 난 여행을 하고 있었나

The traveller sees what he sees.

The tourist sees what he has come to see.

 

The traveller sees what he sees. The tourist sees what he has come to see. - G.K. Chesterton

 

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나.

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나. 뜨거운 햇볕에도 바람을 맞으면 제법 쌀쌀해지는 포르투의 독특한 날씨 탓에 서늘함을 피하러 아무 카페에 들어왔다. 정말 아무 카페였다. 찾아두었던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뒤늦게 그곳이 관광 명소인 것을 알았다. J.K 롤링 작가가 해리포터를 집필했던 카페라던가. 우리 일행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던 카페 앞을 그대로 지나쳐 사람이 별로 없는 주위 카페에서 커피를 시켰다. 에그타르트도 하나씩 시켰고, 가격은 저렴했다. 여행의 중심지에서 저렴한 가격이라니, 과연 커피도, 에그타르트도 지금껏 포르투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있진 않았다. 그럼에도 나를 흡족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카페에 앉았을 때 보이는 바깥 모습

 

서울에 여행자를 위한 카페를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다. 홀로 여행하며 자칫 외로울 수도 있는 여행자들을 위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집처럼 들어갈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다. 내가 포르투에서 우연히 들어간 그 카페가 비록 집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 장소는 타지에서 알게 모르게 지쳐있던 우리를 아늑하게 받아주었다. 벽에는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담은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포르투의 여느 다른 도로들과 같이 좁은 도로 방향으로 뚫려있는 넓은 창과 가게 구석구석에는 여행과 관련된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그중 나의 눈과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문구가 있었다.

 

"The traveller sees what he sees. The tourist sees what he has come to see." - G.K.Chesterton

 

"여행자는 보이는 것을 본다. 그리고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

(번역하는 게 익숙지 않은 터라 영어 문장 자체에서 오는 느낌을 한글에 그대로 옮기기는 힘들다. 그래도 해석해보면 이렇다.)

 

이 문구를 보고 포르투에 도착하기 전, 스페인 여행을 하며 들었던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그리고 포르투에 도착해서 처음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마주쳤을 때 느꼈던 황홀감을 이해했다. 늘 다양한 사람들과 여행에 관해 이야기하며 스스로 어느 정도 '여행 좀 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했던 내 모습이 민망했다. 오만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여행을 추천하고, 스스로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며, 여행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하며 정작 나는 여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뚜렷이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도 "여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뚜렷이 대답할 수 없었다. 물론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도 "여행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명쾌하게 대답할 수 없다. 여행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하면 할수록 그의 본질에 대한 개념이 심오해지는 무언가 이기 때문이다.

 

 

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_ Augustine of Hippo

 

"여행은 채우러 가는 것이다."

"여행은 채우러 가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학교에서 했던 어떤 발표 일부분이 불현듯 떠올랐다. 여행은 비우고 가는 것이다. 잔뜩 채우고 가서 털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 한 여행 작가의 말마따나 돌아온 여행자의 가방에는 신선한 자극들과 참신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여행은 돌아온 일상 위에 발판을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가져오는 것이다. 보이는 것을 보고, 느껴지는 것을 느끼고, 그냥 있는 것을 먹는 것이다. 물론 몰라서 이렇게 못하는 것은 아니다. 늘 바쁘게 무언가를 가득가득 채우고자 살아가는 우리기에 익숙하지 않았을 뿐이고, 자신이 비어 있으면 이런 무한 경쟁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에 비해 뒤처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도덕경 11장]
바큇살 삼십 개가 하나의 바퀴통에 함께하는데, 그 없어짐을 당하여 수레의 쓰임이 있게 된다.
찰흙을 반죽하여 그릇을 만들면 그 없어짐을 당하여 그릇의 쓰임이 있게 된다.
집에 들창을 뚫어서 방을 만들면, 그 없어짐을 당하여 방의 쓰임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있게 된 것이 이익이 됨은, 없어진 것의 쓰임이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가득 쌓아놓은 것들, 돈, 지식과 같은 것들은 존재함으로써 쓰임이 있다. 하지만 그릇도 '없음'에서 그 쓰임이 되듯, 우리들의 마음의 그릇도 신선한 것들을 담기 위해서는 '없음'이 필요하다. 여행에 대해 기대를 해도 그저 기대할 뿐, 망상으로 채워 넣지 말아야 한다. 도착한 여행지에서 실망감이 물밀듯 쏟아져 내려도, 쓸데없는 합리화로 기대와 실망 사이의 틈새를 채워 넣지 말아야 한다. 혹은 쓸데없는 비관적인 시각으로 기대를 억지로 낮추지도 말아야 한다. 여행지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보이는 것을 보고, 느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돌아온 당신의 배낭 속은 신선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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